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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pm.8:08, Sunday ( 83hit )
단편소설 - 보편적인 노래

"그… 선생님. 제가 요즘 아무렇지도 않은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가 많아요."

"아무렇지도 않은데 갑자기 눈물이 난다고요?"

"네, 네…. 그냥 길을 걷다가 갑자기 울고 싶어져요. 출근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버릴 때도 있고. 운동하러 나가서 신나게 잘 뛰다가 어느 곳만 다다르게 되면 기분이 막 우울해지고 그래요. 더 뛸 힘도 안 나고 그냥 벤치에 앉아서 흑흑 울었어요."

하얀색 가운을 입고 인자한 표정을 짓는 의사는 여자가 말하는 내용들을 그때그때 바로 키보드로 기록하였다. 여자는 자신의 증상이 납득하기 어렵게 들릴 것이라 짐짓 걱정했다.

"이해는 안 되시겠지만 정말로 그래요. 저 같은 사람이 있나요?"

"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요."

의사는 잠깐 뜸을 들인 뒤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조증이라고 감정 상태가 불안정해서 기분이, 쉽게 말하면 큰 폭으로 변할 수가 있어요. 그런 경우라면 선생님처럼 갑자기 울고 싶거나 할 때가 있죠."

"아! 아니요. 그거랑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기분이 막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제가 잘 알아요. 그냥 음…. 조울증이라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쉽게 휘둘리는 거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는 않고, 그냥 갑자기 그래요. 무슨 기준이 있는 거 같지도 않고…."

"음… 혹시 갑자기 울고 싶을 때, 왜 울고 싶어지는지 찬찬히 고심해본 적 있나요?"

"네 있어요. 뭔가 좀… 나를 둘러싼 분위기나 풍경이 되게 익숙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페북이나 인스타 보면 음식점이나 관광지 같은 게 뜨잖아요. 저는 한번도 그곳을 안 가봤는데, 왠지 모르게 가봤던 거 같고 익숙하고 정겨워 보이고… 향수 같은 게 느껴져요. 그렇게 감상에 젖다가 슬퍼지고 눈물도 나요."

"갑자기 슬프게 만드는 매개물이 다양하네요?"

"그런 거 같아요. 또, 자주 가던 곳도 지나면서 향수가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분명 그 장소에 지금 제가 서 있는데도 그 자리에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아요. 뭐가 빠진 것 같고. 분명히 항상 가던 곳인데 어느 날 그런단 말이죠."



의사는 그 말을 듣자 미간을 잠깐 찌푸리곤 다시 타이핑을 치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무슨 상태다 무슨 병이다 이렇게 정의 내리기가 사실 쉽지가 않아요. 선생님께서는 요즘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셨다고 하고 잠도 잘 못 주무셨다고 하시니… 여러 가지 방면으로 정신적으로 지치셔서 혼란스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면 유도제 좀 처방해 드릴테니 잠 드시기 힘드실 때 드시고 주무시고요.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시는 걸 권장 드리고 스트레스 조절 잘 하셔야 해요…"



두툼한 약봉지를 들고 병원을 나온 여자는 여전히 께름칙했다. 여자는 한숨을 푹 내쉬고 집으로 갈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여자는 집 가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터지지 않기를 그저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여자의 이유 모를 눈물샘 작용은 점점 잦아들어갔다. 의사의 약 처방과 권고가 효과가 있었다기 보다 거듭된 난처한 상황에서 학습한 대비책을 세운 덕분이다. 이제 여자는 신촌 2번 출구라든지 남산 타워가 잘 보이는 한강 둔치라든지 자신의 눈물샘이 굼벙 터져버릴 곳을 예상하여 잘 피해 갔다. 때로는 예상치 못하게 그 감정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자주 가던 집 앞 중국집에서 항상 먹던 짬뽕이 아니라 짜장면 곱빼기를 주문했다. 완성된 짜장면이 자신의 식탁 위에 오르고 크게 한입을 먹는 순간 그 감정이 차올랐다. 하지만 여자는 이제 대처할 수 있었다. 뭔지 모를 그 감정이 자신의 가슴을 잠식하기 전에 서둘러 다른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다. 재빨리. 짬뽕을 생각한다던가. 그러면 조금은 그 기분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이 문제였다. 7월 26일. 7월 달력을 넘기고 휴대폰으로 캘린더로 26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다. 여자는 7월 26일이 내뿜는 야릇한 향기에 압도당하여 멍하니 달력을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7월 26일을 멍하니 쳐다봤다. 7.26이라는 숫자 쌍은 여느 다른 숫자쌍들과는 달리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독보적으로 오묘하게 느껴졌고 가슴을 잡아두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그 날이 자신의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될, 혹은 되었던 날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으로.



시간이 지나 7월 26일. 그 날 여자는 평범했다. 여자는 퇴근을 하고 친한 언니를 만나기 위해 사당역으로 갔다. 해가 저물어져 가는 금요일의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시원한 하늘색의 남방으로 깔끔하게 옷을 입은 젊은 남자.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으로 휴대폰을 그저 응시하는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 가벼워 보이는 살구색 원단으로 짜인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열심히 카톡 중인 여자. 그 모두는 각자의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언제나 봐왔던 보통의 풍경이었다. 여자는 신대방역을 지나면서 차창 너머의 야경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여기… 봄날에 벚꽃이 참 향기롭게 폈었는데."

문득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여자는 서울로 상경한 후 매년 봄날이 되면 신대방역을 지나면서 벚꽃을 넋 놓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벚꽃이 지면 그 자리에 벚꽃이 피었었다는 사실을 까먹기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올해의 봄 향기는 왜인지 생각이 났다. 여자는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곤 슬퍼졌다. 또 감정의 병이 도질려는 찰나, 오늘 만나기로 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현아. 오늘 내가 퇴근이 조금 늦어져서 10분 정도 늦게 도착할 거 같아. 어디쯤 왔어?"

"아, 언니. 저 지금 서울대입구역 지나고 있어요. 괜찮아요. 10분이야 뭐"

여자는 활짝 웃어 보였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괜찮아서였다. 울적할 뻔할 때에 타이밍 맞춰서 전화를 해줘서 고마웠고 기다리면서 기분도 좀 풀 겸 해서.

"아 그래. 정말 미안하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너한테 미안할 짓을 하네…"

전화는 그렇게 끊겼지만 뒷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여자는 마지막에 언니가 말한, 오늘 같은 날이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여자는 사당역에서 내렸다. 벽돌로 아날로그 하게 인테리어 된 플랫폼이 싸-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여자는 조금 움츠러들었다. 걸음을 걸어 사당역 5번 출구로 나왔다.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며 통화하고 있고 누군가는 버스정류장 뒤 쪽 상가 점포의 물건을 구경하고 누군가는 팔짱을 서로 끼고 일렬횡대로 걷고 누군가는 매장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있었다. 서있는 모두가 편안해 보였고 일상을 포근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매장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1년 전쯤에 유행했던 사랑 노래였다. 한때 멜론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따라 불렀던 노래. 여자도 예전에 줄곧 들었던 그 노래.



여자는 숨이 턱 막혔다. 갑자기 속에서 뭐가 올라오는 느낌이다. 숨쉬기가 버거워서 헥헥거리다가 이내 쪼그려 앉는다. 찡그린 얼굴을 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쳐댄다.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자에게 눈길을 잠시 주고 가던 길을 가기만 했다. 지금 자신에게는 가야 할 길이 있다는 듯이, 쪼그려서 울상 짓는 여자에게 관심 주는 짓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는 듯이 여자를 스쳐 지나갔다. 여자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아 진짜 이러면… 안되는데…"

여자는 이내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  자신의 가슴을 치는 여자의 주먹 소리는 점점 격해졌다. 더 주먹을 쥐고 더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고 겨우 몇 마디를 읊조린다.

"사당역"

"7월 26일"

"이 노랫소리"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여자는 무언가를 분명 잃어버린 거라고 사무치게 생각했다. 근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안 난다. 비싼 건지, 작은 건지, 먹는 건지, 향기가 나는 것인지, 심지어는 만져지는 것인지 당최 하나도 모르겠지만 여자는 분명, 분명히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느꼈다. 잃어버린 건 알겠는데 무엇을 잃은 건지 모르는 이 상황에 여자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옆에선 어느새 언니가 와서 아무 말 없이 여자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모두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내가 늦게 와서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뛰어서라도 먼저 와서 기다려줄 텐데."



사람들은 여전히 버스 전광판을 보고 있거나 상가 매장의 물건을 구경하고 있거나 서로들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0분 전의 풍경과 달라진 점이 없다. 어쩌면 한 달 전, 두 달 전 아니 1년 전의 풍경과도 다른 점이 없을 것이다. 여자는 이 보편적인, 너무나도 보편적인 이 순간에, 도대체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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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노래는 제가 브로콜리너마저 밴드를 처음 알게된 노래예요. 무려 7년전인 중3때 친구가 코인 노래방에서 불러준게 엄청 강하게 인상 남아서 지금도 브로콜리너마저 노래를 듣고자 하면 이 노래부터 틉니다.

저는 몇 달전부터 노래를 듣고 짧디 짧은 단편 소설을 써보고 있어요. 그리고 브로콜리너마저 노래도 써봤습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랄께요. 다른 노래 이야기도 궁금하시다면 페북에 gonglee를 검색해주세요! 페이지 링크를 거는건 홍보같아서 하지 않겠습니다.


07.25   잔디   
네 검색해볼게요^^
같이 숨이 조금 막히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2019 이른열대야 마지막주 시작 - 공연장 근처 식당소개 [3] 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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